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 (문단 편집) === 광주사태[anchor(광주사태)] === [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QuestionableGreatQuizzicalMilk, 합의사항1=광주사태를 이 문서의 4.1문단으로 리다이렉트하기)] 흔히 인터넷 등지에서는 광주사태라는 단어 자체가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언론 탄압으로]] 인해 만들어진 왜곡된 용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87년 6월 이후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재평가]] 되기 전까지[* [[노태우 정부|노태우 정권]] 시절 민주화합추진위원회에서 명칭을 지정하게 되었다. 그이전에는 광주사태수습위원회와 같은 단어로 그저 언급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었다. 하지만 현재 정해진 용어가 있는 상황에서 광주사태라고 사용하는 것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단어로 광주사태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신군부나 신군부의 [[땡전뉴스|어용언론]] 뿐만 아니라 민주 인사 측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단어였다. || [[파일:김영삼_기자회견.png|width=400]] || [[파일:이희성_담화문.png|width=400]] || || 김영삼의 기자회견문 (1980년 5월 20일)[*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제2권, 광주광역시 5.18사료 편찬위원회, 1997, 24쪽] ||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담화문 (1980년 5월 21일)[*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제2권, 광주광역시 5.18사료 편찬위원회, 1997, 29쪽] || 관련 자료중 광주사태라는 단어가 간접적으로나마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980년 5월 20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기자회견문이다. 김영삼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5.17 계엄 전국 확대와 광주에서의 유혈사태를 모두 "사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돌려 언급했으며, 이는 광주사태라는 단어가 군부의 왜곡으로 만들어진 단어라는 근거로 제시되는 1980년 5월 21일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담화문보다 하루 이른 날짜다. || [[파일:민주시민.png|width=400]] || [[파일:목포시민투쟁위원회.png|width=400]] || || 민주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 [*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제2권, 광주광역시 5.18사료 편찬위원회, 1997, 38쪽] || 목포시민투쟁위원회 [*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제2권, 광주광역시 5.18사료 편찬위원회, 1997, 37쪽 ] || 물론,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사태" 언급 이후로 [[동아일보]][* 5.18 당시, 동아일보는 사건 발생 닷새 뒤에 첫 보도를 냈으며 그 보도 내용 역시 신군부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해 광주 시민들에게 광주동아일보가 습격을 받기도 했다.]를 위시로 한 신군부측에서 사건의 심각성을 줄이기 위해서 사태라는 단어를 선점하여 선동에 사용한 정황은 있다. 실제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광주사태라는 단어가 5.18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지배적이 되었기도 하며, 당시 광주에서 배포되었던 문서인 "민주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에서는 민주시민의 행동강령으로서 "KBS라디오 TV방송에서 보도되는 "광주사태"에 대해서 속지 맙시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목포항쟁의 당사자인 목포시민민주화투쟁위원회에서 광주와 목포를 묶어 둘 다 사태로 언급하고 있으며, [[투사회보]]는 신군부의 언론왜곡에 저항하는 저항언론이었으므로 신군부의 영향력에 있지 않았는데, 투사회보 역시도 6호에서 당시의 상황을 가리켜 '''광주사태'''라고 명명하고 이를 외신에 알릴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http://www.518archives.go.kr/books/ebook/2/#page=60|최규하 각하께 드리는 호소문]][*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제2권, 광주광역시 5.18사료 편찬위원회, 1997, 61쪽]을 발표한 "광주사태수습위원회"는 민주화 운동측 인물들로 이루어졌으며 [[윤공희]] 대주교 역시도 광주사태라는 단어를 여러차례 사용하여 [[김대중]], [[정동년]] 등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되어 형을 언도받은]] 이들이나 [[내란죄]]로 구속된 민주화운동 참가자 구명운동을 펼친 바 있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단순하게 광주사태라는 단어 자체가 오직 왜곡되기만 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것보다는 이미 일반적으로 가치중립적으로 사용되었던 "광주사태"라는 단어가 존재했는데, 신군부 측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줄이기 위해 광주사태라는 단어를 수용하였으며[* 사태라는 단어가 지배적이 되기 전에는 "광주학살", "광주인간도살"과 같은 굉장히 과격한 단어도 가끔 언급되었는데, 신군부 입장에서는 그러한 단어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해당 사건을 가리키는 단어로 가장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이미 [[1990년대]]를 거쳐서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가 이루어진 5.18 민주화운동을, 학술적 의도 혹은 당시의 단어 사용을 존중하려는 의도가 아닌데도[* 서적 한국민주화운동사는 이런 이유로 광주 민주화운동 파트에서는 "광주사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굳이 현 시점에서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꺼내어 사용하는 것에는 폄하의 의도가 있다고 볼 여지가 다분하다. 최근에는 [[지만원]], [[윤서인]] 등의 극우인사가 특히나 광주 사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광주 폭동'''이나 '''광주 내란''' 등의 단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https://youtu.be/7qMGfln6PIY|광주 사태라는 단어를 쓰는 외국인 유튜버]]. 이 [[유튜버]]는 영상에서 [[택시운전사]]를 훌륭한 영화로 소개하고 있으며 [[한국학]]을 전공한 인물로 한국 [[극우]] 세력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광주 사태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아마도 광주 사태라는 표현이 폄하가 아닌 중립적 명칭으로 쓰이던 시절 한국학을 공부하며 그 표현을 익혔고, 아무리 한국 전문가여도 [[외국인]]이다보니 [[2010년대]] 이후 인터넷 상에서 해당 표현이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